
연극 오펀스는 세 인물의 대화만으로 오롯이 이끌어 가는 작품이다. 무대는 단출하고 이야기 또한 단순해 보이지만, 그 안을 채우는 감정의 밀도는 결코 가볍지 않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극이 마치 ‘연기’로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배우들이 극 속 인물을 표현한다기보다, 각자의 내면에 쌓인 울분을 그대로 토해내는 듯한 순간들이 이어졌다. 그 감정의 진폭과 밀도는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고, 어느 순간 나 역시 그 공간 안에 함께 갇혀 있는 듯한 몰입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번 공연은 젠더프리로 연출되어 세 명의 여성 배우가 무대를 이끌었다. 그 선택은 단순한 캐스팅의 변화가 아니라, 관계를 바라보는 시선을 확장시키는 장치처럼 느껴졌다. 형제라는 설정은 더 이상 성별에 머물지 않고, 결핍과 의존, 애증이 뒤엉킨 ‘정서적 관계’로 확장된다.

그 중심에는 세 배우의 밀도 높은 연기가 있었다.
우현주가 연기한 해럴드는 극의 중심을 단단하게 붙잡는다. 과하지 않은 여유와 안정감으로 두 인물 사이를 조율하며, 이야기가 흔들리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반가웠던 문근영. 이전에 보아왔던 이미지와는 다른 연기로, 거칠고 폭발적인 감정 속에서도 다양한 결을 만들어내며, 혼신의 힘을 다하는 연기를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김주연은 극 전체의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인물의 불안과 순수를 섬세하게 오가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 세 배우의 조합은 단순히 ‘잘 맞는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서로의 호흡을 끌어올리고, 감정을 밀어붙이며, 결국 하나의 살아 있는 관계를 만들어낸다. 이 조합이야말로 이 작품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연극 <오펀스>는 결국 인간의 결핍과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는 모두 어딘가 비어 있는 채로 살아가며, 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누군가에게 기대고 또 의지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기대는 존재에서, 기대어줄 수 있는 존재로 나아가는 순간.
그 변화의 지점에서 인간은 비로소 성장한다.
그리고 어쩌면, 그때부터가 진짜 삶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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