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소설] 눈으로 만든 사람_최은미
최은미 작가의 소설은 이번이 처음이다.
단편들을 읽으며, 문득 최은영 작가의 작품과 닮아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중 몇 편이 마음에 닿았다.
지금은 마치 먼 과거의 일처럼 느껴지지만, 총 9개의 단편 중, [여기 우리 마주]는 코로나 시국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모두가 저마다의 이유로 고통스러웠던 그때, 특히 아이들이 있는 가정은 그 어느 때보다 혼란과 어려움 속에 놓여 있었다. 2020년 3월 초 예정되었던 개학이 몇 차례나 연기되었고, 결국 4월에는 사상 초유의 온라인 개학이 이루어졌다. 5월 중순이 되어서야 아이들은 부분적으로 등교할 수 있었다.
온종일 집에 있어야 했던 아이들은 지루하고 우울했고, 부모들은 일과 육아에 지쳐 예민해져 갔다. 서로 함께 있어 좋다는 가족들의 이야기도 간간이 들려왔지만 그리 믿음이 가진 않았었다. 나의 딸도 2020년 고3이었다.
[여기 우리 마주]
그녀는 홈공방을 시작한 지 9년 만에, 처음으로 상가에 공방을 열였다. 마침 그 시기는 코로나가 막 시작되던 때였다. 새로운 일에 대한 설렘과 고민, 온종일 집에 있어야 하는 아이를 향한 걱정이 뒤섞이며 그녀의 마음은 혼란스러웠다.
공방에 있는 동안만큼은 누군가의 아내도, 누군가의 엄마도 아닌 오롯이 그녀 자신이고 싶었다. 가족의 크고 작은 일로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공방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만큼은, 프로페셔널한 공방 선생님으로 남고 싶었다.
매력적인 공방 선생님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과, 주부로서의 책임 사이에 보이지 않는 간극.
p. 74 왜 나는 나의 어떤 부분을 지워야만 내 실력을 신뢰받을 수 있다고 믿게 되었는지. (.....)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그 봄에 감당했던 것들에 대해 어는 순간부터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지레짐작으로 서로를 넘기게 되었다. 서로한테 매력적인 사람이고 싶을수록, 테이블에 함께 앉아 있는 채로 고립되어 갔다.
p. 60-61 내가 상가 공방을 내면서 꿈꾸던 게 그런 것이었다. (......) 보살피고 의탁하는 관계들이 아니라 대등한 존재들끼리 친밀감을 나누는 걸 보고 사는 것.
그녀가 바라던 꿈은 현실에서는 녹록지 않았다. 딸에 대한 걱정으로 공룡알 모양의 홈 카메라를 설치했고, 공방에서 카메라 앱을 수도 없이 쳐다보며 딸에게 잔소리를 했다. 그러고 나면 또 자책감이 들었다. 누군가를 보살핀다는 일은 끝이 없고 고통스럽다. 그녀 역시도 그 고통에서 벗어나, 서로를 억누르지 않는 관계 속에서 자유롭고 싶었다.
자녀들을 통해 알게 된 오래된 지인, 수미. 그녀와 서로 의지하며 지내지만, 마음 깊숙한 곳까지 내어주지 못했다. 게다가 코로나는 사람들 사이의 물리적 거리뿐 아니라, 심리적 거리마저 멀게 만들어버렸다. 눈치를 보게 했고, 피하게 했다.
대등한 사람들과 맺은 관계도 친밀감은 쉽게 닳았고, 거리는 점점 멀어졌다. 사람들은 각자의 외로움 속에서 조용히 물러났다.
p. 51 수미는 자신의 재난지원금을 나에게 와서 썼다. 그리고 나는 지금 수미를 만날 수 없다.
보살펴야 하는 존재들에 대한 과도한 염려는 사랑에서 시작되었을지라도 관계를 조이는 불안이 될 수 있다. 어렵지만, 한 발 물러서서 신뢰를 보내고, 내가 염려할 필요 없는 영역까지 책임지려 하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다.
결국, 그녀는 쓰레기통을 비우며 거실장 위의 공룡알을 함께 버린다. 불안과 미련을 함께 덜어낸 것이다. 그녀는 그렇게 또, 나아가고 있었다.
인간관계를 깊이 탐구하고, 그 감정들을 섬세하게 다루고 있는 최은미 작가의 다른 소설집, [아홉 번째 파도]를 읽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