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잡담
시 한편_동그란 길로 가다
Corni
2021. 3. 11. 12:10
동그란 길로 가다 / 박노해
누구도 산정에 오래 머물 수는 없다
누구도 골짜기에 오래 있을 수는 없다
삶은 최고와 최악의 순간들을 지나
유장한 능선을 오르내리며 가는 것
절정의 시간은 짧다
최악의 시간도 짧다
천국의 기쁨도 짧다
지옥의 고통도 짧다
긴 호흡으로 보면
좋을 때도 순간이고 어려울 때도 순간일 것을
돌아보면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고
나쁜 게 나쁜 것이 아닌 것을
삶은 동그란 길을 돌아나가는 것
그러니 담대하라
어떤 경우에도 너 자신을 잃지 마라
어떤 경우에도 인간의 위엄을 잃지 마라
군 입대한 아들이 너무 그립다.
자대 배치마저도 제일 열악하다는 최전방 사단으로 받게 되었다.
최악의 시간은 짧게 끝나길
절정의 시간은 오래 지속되길 바라는 것은 인간의 욕심일 거다.
아들의 혹독한 군 시계는 빨리 흘러가기를
딸의 대학 새내기 시간은 더디 가기를
그 둘을 동시에 바라야 하는 나는, 모순 투성이다.
좋은 것도 좋은 게 아니고, 나쁜 것도 나쁜 게 아니라면
다 돌고 돌아 지나가는 것이 인생이라면
억울할 것도, 분노할 것도, 속상할 것도 없다.
한결같이 인간됨을 잃지 말자.
둥그렇게 돌아 나가자.